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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37

무소유 (28) 아직도 우리에겐 6월이 장미의 계절일 수만은 없다. 아직도 깊은 상흔이 아물지 않고 있는 우리에게는, 카인의 후예들이 미쳐 날뛰던 6월, 언어와 풍습과 핏줄이 같은 겨레끼리 총부리를 겨누고 피를 흘리던 악의 계절에도 꽃은 피는가. 못다 핀 채 뚝뚝 져 버린 젊음들이, 그 젊은 넋들이 잠들어 있는 강 건너 마을 동작동. 거기 가보면 전쟁이 뭐라는 걸 뼈에 사무치도록 알게 된다. 그것도 남이 아닌 동족끼리의 싸움, 주의나 사상을 따지기 앞서 겨레의 치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살아남은 사람들에게는 전쟁의 상처가 강 건너 마을만큼이나 잊혀지고 있는 것 같다. 6월이 오면 하루나 이틀쯤 겨우 연중 행사로 모였다가 흩어지고 마는 가벼운 기억들, 전장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그들이 남긴 마지막 발음이 무엇이었던가를 우리는 까맣게 잊.. 2010. 3. 16.
무소유 (27) 본래무일물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물건과 인연을 맺는다. 물건 없이 우리들의 일상생활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인간을 가리켜 만물의 영장이라 하는 것도 물건과의 상관 관계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면적인 욕구가 물건과 원만한 조화를 이룰 때 사람들은 느긋한 기지개를 켠다. 동시에 우리들이 겪는 어떤 성질의 고통은 이 물건으로 인해서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 중에도 더욱 고통스러운 것은 물건 자체에서보다도 그것에 대한 소유 관념 때문이다. 자기가 아끼던 물건을 도둑맞았거나 잃어 버렸을 때 그는 괴로워한다. 소유 관념이란 게 얼마나 지독한 집착인가를 비로소 체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개의 사람들은 물건을 잃으면 마음까지 잃는 이중의 손해를 치르게 된다. 이런 경우 집착의 얽힘에서 벗어나 한 생각 돌이키는 회심回心의 작업.. 2010. 3. 16.
무소유 (26) 신시(神市) 서울 한동안 뜸하던 꾀꼬리 소리를 듣고 장마에 밀린 빨래를 하던 날 아침 우리 다래헌에 참외 장수가 왔다. 노인은 이고 온 광주리를 내려놓으면서 단 참외를 사 달라는 것이다. 경내에는 장수들이 드나들 수 없는 것이 사원의 규칙으로 되어 있지만, 모처럼 찾아온 노인의 뜻을 거절할 수 없어 일금 40원을 주고 두 개를 샀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돈을 받아 쥔 노인은 돈에 대고 퉤퉤 침을 뱉는 것이 아닌가. 그 표정이 하도 엄숙하기로 차마 연유를 물어볼 수 없었다. 며칠 후, 일주문 밖에서 그 참외 장수 할머니를 우연히 만났다. 왜 돈에 침을 뱉었느냐 물으니 그 날의 마수걸이여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래서 잘 팔리더냐고 했더니 아주 재수가 좋았다 한다. 그때 돈에 침을 뱉던 그 엄숙한 표정과 비슷한 모습을.. 2010. 3. 16.
무소유 (24) 순수한 모순 6월을 장미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그래 그런지, 얼마 전 가까이 있는 보육원에 들렀더니 꽃가지마다 6월로 향해 발돋움을 하고 있었다. 몇 그루를 얻어다 우리 방 앞뜰에 심었다. 단조롭던 뜰에 향기가 돌았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노라면 모짜르트의 청렬(淸冽) 같은 것이 옷깃에 스며들었다. 산그늘이 내릴 때처럼 아늑한 즐거움이었다. 오늘 아침 개화! 마침내 우주의 질서가 열린 것이다. 생명의 신비 앞에 서니 가슴이 뛰었다. 혼자서 보기 아까웠다. 언젠가 접어 두었던 기억이 펼쳐졌다. 출판일로 서울에 올라와 안국동 선학원에 잠시 머무르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아침 전화가 걸려 왔다. 삼청동에 있는 한 스님한테서 속히 와 달라는 것이다. 무슨 일이냐고 하니 와서 보면 알 테니 어서 오라는 것이었다. 그 길로.. 2010. 3. 16.
무소유 (23) 침묵의 의미 현대는 말이 참 많은 시대다. 먹고 뱉어내는 것이 입의 기능이긴 하지만, 오늘의 입은 불필요한 말들을 뱉어내느라고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수고를 하고 있다. 이전에는 사람끼리 마주 보며 말을 나누었는데, 전자매체가 나오면서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지껄일 수 있게 되었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는 유언비어나 긴급조치에 위배되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다스리는 사람들의 비위에 거스르지만 않는다면, 그 말의 내용이 아첨이건 거짓이건 혹은 협박이건 욕지거리건 간에 마음대로 지껄일 수 있다. 가위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풍토이다. 그런데 말이 많으면 쓸 말이 별로 없다는 것이 위들의 경험이다. 하루하루 나 자신의 입에서 토해지는 말을 홀로 있는 시간에 달아 보면 대부분 하잘 것 없는 소음이다. 사람이 해야할 말이란 꼭 .. 2010. 3. 16.
무소유 (22) 영원한 산 산에서 사는 사람들이 산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다면, 속 모르는 사람들은 웃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산승들은 누구보다도 산으로 내닫는 진한 향수를 지닌다. 이 산에 살면서 지나온 저 산을 그리거나 말만 듣고 아직 가보지 못한 그 산을 생각한다. 사전에서는 산을 '육지의 표면이 주위의 땅보다 훨씬 높이 솟은 부분'이라고 풀이한다. 이러한 산의 개념을 보고 우리는 미소를 짓는다. 그것은 형식논리학의 답안지에나 씀직한 표정이 없는 추상적인 산이기 때문이다. 산에는 높이 솟은 봉우리만이 아니라 깊은 골짜기도 있다. 나무와 바위와 시냇물과 온갖 새들이며 짐승, 안개, 구름, 바람, 산울림, 그리고 퇴락해 가는 고사古寺, 이밖에도 무수한 것들이 우리들의 상념과 한데 어울려 하나의 산을 이루고 있다. 산이 좋아 산에.. 2010. 3. 16.
무소유 (21) 녹은 그 쇠를 먹는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의 마음처럼 불가사의한 것이 또 있을까.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받아들이다가도,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는 것이 우리 마음이다. 그래서 가수들은 오늘도 "내 마음 나도 몰라......"라고 우리 마음을 대변한다. 자기 마음을 자신이 모른다니, 무책임한 소리 같다. 하지만, 이것은 평범하면서도 틀림이 없는 진리다. 사람들은 일터에서 많은 사람들을 대하게 된다. 어떤 사람과는 눈길만 마주쳐도 그날의 보람을 느끼게 되고, 어떤 사람은 그림자만 보아도 밥맛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한정된 직장에서 대인관계처럼 중요한 몫은 없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정든 직장을 그만두게 될 경우, 그 원인 중에 얼마쯤은 바로 이 대인관계.. 2010. 3. 16.
무소유 (20) 인형과 인간 1 내 생각의 실마리는 흔히 버스 안에서 이루어진다. 출퇴근 시간의 붐비는 시내버스 안에서 나는 삶의 밀도 같은 것을 실감한다. 선실(禪室)이나 나무 그늘에서 하는 사색은 한적하긴 하지만 어떤 고정관념에 갇혀 공허하거나 무기력해지기 쉬운데 달리는 버스 안에서는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종점을 향해 계속해서 달리고 있는 버스는 그 안에 실려 가는 우리들에게 인생의 의미를 적잖게 부여하고 있다. 산다는 일이 일종의 연소요, 자기 소모라는 표현에 공감이 간다. 그리고 함께 타고 가는 사람들의 그 선량한 눈매들이, 저마다 무슨 생각에 잠겨 무심히 창 밖을 내다보는, 그래서 조금은 외롭게 보이는 그 눈매들이 나 자신을 맑게 비추고 있다. 그 눈매들은 연대감을 갖게 한다. 이 시대와 사회에서 .. 2010. 3. 16.
무소유 (19) 미리 쓰는 유서 죽게 되면 말없이 죽을 것이지 무슨 구구한 이유가 따를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레 죽는 사람이라면 의견서(유서)라도 첨부되어야겠지만, 제 명대로 살 만치 살다가 가는 사람에겐 그 변명이 소용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반하게 마련이므로, 유서에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그런데 죽음은 어느 때 나를 찾아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많은 교통사고와 가스 중독과 그리고 원한의 눈길이 전생의 갚음으로 나를 쏠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죽어 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나를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있어.. 2010.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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