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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possession (무소유)39

무소유 (26) 신시(神市) 서울 한동안 뜸하던 꾀꼬리 소리를 듣고 장마에 밀린 빨래를 하던 날 아침 우리 다래헌에 참외 장수가 왔다. 노인은 이고 온 광주리를 내려놓으면서 단 참외를 사 달라는 것이다. 경내에는 장수들이 드나들 수 없는 것이 사원의 규칙으로 되어 있지만, 모처럼 찾아온 노인의 뜻을 거절할 수 없어 일금 40원을 주고 두 개를 샀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돈을 받아 쥔 노인은 돈에 대고 퉤퉤 침을 뱉는 것이 아닌가. 그 표정이 하도 엄숙하기로 차마 연유를 물어볼 수 없었다. 며칠 후, 일주문 밖에서 그 참외 장수 할머니를 우연히 만났다. 왜 돈에 침을 뱉었느냐 물으니 그 날의 마수걸이여서 그랬다는 것이다. 그래서 잘 팔리더냐고 했더니 아주 재수가 좋았다 한다. 그때 돈에 침을 뱉던 그 엄숙한 표정과 비슷한 모습을.. 2010. 3. 16.
무소유 (25) 영혼의 모음 - 어린왕자에게 보내는 편지 1 어린 왕자! 지금 밖에서는 가랑잎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창호에 번지는 하오의 햇살이 지극히 선하다. 이런 시각에 나는 티 없이 맑은 네 목소리를 듣는다. 구슬 같은 눈매를 본다. 하루에도 몇 번씩 해 지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을 그 눈매를 그린다. 이런 메아리가 울려온다. "나하고 친하자,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나는 외롭다...... ." 이제 너는 내게서 무연한 남이 아니다. 한 지붕 아래 사는 낯익은 식구다. 지금까지 너를 스무 번도 더 읽은 나는 이제 새삼스레 글자를 읽을 필요도 없어졌다. 책장을 훌훌 넘기기만 해도 네 세계를 넘어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행간에 쓰여진 사연까지도, 여백에 스며 있는 목소리까지도 죄다 읽고 들을 수 있게 되었다. 몇해전.. 2010. 3. 16.
무소유 (24) 순수한 모순 6월을 장미의 계절이라고 했던가. 그래 그런지, 얼마 전 가까이 있는 보육원에 들렀더니 꽃가지마다 6월로 향해 발돋움을 하고 있었다. 몇 그루를 얻어다 우리 방 앞뜰에 심었다. 단조롭던 뜰에 향기가 돌았다. 아침 저녁으로 물을 주노라면 모짜르트의 청렬(淸冽) 같은 것이 옷깃에 스며들었다. 산그늘이 내릴 때처럼 아늑한 즐거움이었다. 오늘 아침 개화! 마침내 우주의 질서가 열린 것이다. 생명의 신비 앞에 서니 가슴이 뛰었다. 혼자서 보기 아까웠다. 언젠가 접어 두었던 기억이 펼쳐졌다. 출판일로 서울에 올라와 안국동 선학원에 잠시 머무르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아침 전화가 걸려 왔다. 삼청동에 있는 한 스님한테서 속히 와 달라는 것이다. 무슨 일이냐고 하니 와서 보면 알 테니 어서 오라는 것이었다. 그 길로.. 2010. 3. 16.
무소유 (23) 침묵의 의미 현대는 말이 참 많은 시대다. 먹고 뱉어내는 것이 입의 기능이긴 하지만, 오늘의 입은 불필요한 말들을 뱉어내느라고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수고를 하고 있다. 이전에는 사람끼리 마주 보며 말을 나누었는데, 전자매체가 나오면서는 혼자서도 얼마든지 지껄일 수 있게 되었다. 민주공화국인 대한민국에서는 유언비어나 긴급조치에 위배되지만 않는다면, 그리고 다스리는 사람들의 비위에 거스르지만 않는다면, 그 말의 내용이 아첨이건 거짓이건 혹은 협박이건 욕지거리건 간에 마음대로 지껄일 수 있다. 가위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풍토이다. 그런데 말이 많으면 쓸 말이 별로 없다는 것이 위들의 경험이다. 하루하루 나 자신의 입에서 토해지는 말을 홀로 있는 시간에 달아 보면 대부분 하잘 것 없는 소음이다. 사람이 해야할 말이란 꼭 .. 2010. 3. 16.
무소유 (22) 영원한 산 산에서 사는 사람들이 산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있다면, 속 모르는 사람들은 웃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산승들은 누구보다도 산으로 내닫는 진한 향수를 지닌다. 이 산에 살면서 지나온 저 산을 그리거나 말만 듣고 아직 가보지 못한 그 산을 생각한다. 사전에서는 산을 '육지의 표면이 주위의 땅보다 훨씬 높이 솟은 부분'이라고 풀이한다. 이러한 산의 개념을 보고 우리는 미소를 짓는다. 그것은 형식논리학의 답안지에나 씀직한 표정이 없는 추상적인 산이기 때문이다. 산에는 높이 솟은 봉우리만이 아니라 깊은 골짜기도 있다. 나무와 바위와 시냇물과 온갖 새들이며 짐승, 안개, 구름, 바람, 산울림, 그리고 퇴락해 가는 고사古寺, 이밖에도 무수한 것들이 우리들의 상념과 한데 어울려 하나의 산을 이루고 있다. 산이 좋아 산에.. 2010. 3. 16.
무소유 (21) 녹은 그 쇠를 먹는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속담이 있다. 사람의 마음처럼 불가사의한 것이 또 있을까.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받아들이다가도, 한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가 없는 것이 우리 마음이다. 그래서 가수들은 오늘도 "내 마음 나도 몰라......"라고 우리 마음을 대변한다. 자기 마음을 자신이 모른다니, 무책임한 소리 같다. 하지만, 이것은 평범하면서도 틀림이 없는 진리다. 사람들은 일터에서 많은 사람들을 대하게 된다. 어떤 사람과는 눈길만 마주쳐도 그날의 보람을 느끼게 되고, 어떤 사람은 그림자만 보아도 밥맛이 떨어지는 경우가 있다. 한정된 직장에서 대인관계처럼 중요한 몫은 없을 것이다. 모르긴 해도, 정든 직장을 그만두게 될 경우, 그 원인 중에 얼마쯤은 바로 이 대인관계.. 2010.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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