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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possession (무소유)39

무소유 (20) 인형과 인간 1 내 생각의 실마리는 흔히 버스 안에서 이루어진다. 출퇴근 시간의 붐비는 시내버스 안에서 나는 삶의 밀도 같은 것을 실감한다. 선실(禪室)이나 나무 그늘에서 하는 사색은 한적하긴 하지만 어떤 고정관념에 갇혀 공허하거나 무기력해지기 쉬운데 달리는 버스 안에서는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생동감을 느낄 수 있다. 종점을 향해 계속해서 달리고 있는 버스는 그 안에 실려 가는 우리들에게 인생의 의미를 적잖게 부여하고 있다. 산다는 일이 일종의 연소요, 자기 소모라는 표현에 공감이 간다. 그리고 함께 타고 가는 사람들의 그 선량한 눈매들이, 저마다 무슨 생각에 잠겨 무심히 창 밖을 내다보는, 그래서 조금은 외롭게 보이는 그 눈매들이 나 자신을 맑게 비추고 있다. 그 눈매들은 연대감을 갖게 한다. 이 시대와 사회에서 .. 2010. 3. 16.
무소유 (19) 미리 쓰는 유서 죽게 되면 말없이 죽을 것이지 무슨 구구한 이유가 따를 것인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 지레 죽는 사람이라면 의견서(유서)라도 첨부되어야겠지만, 제 명대로 살 만치 살다가 가는 사람에겐 그 변명이 소용될 것 같지 않다. 그리고 말이란 늘 오해를 동반하게 마련이므로, 유서에도 오해를 불러일으킬 소지가 있다. 그런데 죽음은 어느 때 나를 찾아올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그 많은 교통사고와 가스 중독과 그리고 원한의 눈길이 전생의 갚음으로 나를 쏠는지 알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 걸음 한 걸음 죽어 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나를 부를지라도 "네" 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있어.. 2010. 3. 16.
무소유 (18) 잊을 수 없는 사람 수연(水然)스님! 그는 정다운 도반이요, 선지식이었다. 자비가 무엇인가를 입으로 말하지 않고 몸소 행동으로 보여준 그런 사람이었다. 길가에 무심히 피어있는 이름 모를 풀꽃이 때로는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하듯이, 그는 사소한 일로써 나를 감동케 했다. 수연 스님! 그는 말이 없었다. 항시 조용한 미소를 머금고 있을 뿐, 묻는 말에나 대답을 하였다. 그러한 그를 15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아니 잊혀지지 않는 얼굴이다. 1959년 겨울, 나는 지리산 쌍계사 탑전에서 혼자 안거를 하려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준비래야 삼동三冬 안거 중에서 먹을 식량과 땔나무, 그리고 약간의 김장이었다. 모시고 있던 은사 효봉 선사가 그 해 겨울 네팔에서 세계 불교도 대회에 참석차 떠나셨기 때문에 나는 혼자서 지낼 수.. 2010. 3. 16.
무소유 (17) 그 여름에 읽은 책 가을을 독서의 계절로 못박아 놓고들 있지만 사실 가을은 독서하기에 가장 부적당한 계절이다. 날씨가 너무 청청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엷어 가는 수목의 그림자가 우리들을 먼 나그네 길로 자꾸만 불러내기 때문이다. 푸르디 푸른 하늘 아래서 책장이나 뒤적이고 있다는 것은 아무래도 고리타분하다. 그것은 가을 날씨에 대한 실례다. 그리고 독서의 계절이 따로 있어야 한다는 것도 우습다. 아무 때고 읽으면 그때가 독서의 계절이지. 여름엔 무더워서 바깥일을 할 수 없으니 책이나 읽는 것이다. 가벼운 속옷바람으로 돗자리를 내다 깔고 죽침이라도 있으면 제격일 것이다. 수고롭게 찾아나설 것 없이 출렁거리는 바다와 계곡이 흐르는 산을 내 곁으로 초대하면 된다. 8,9 년 전이던가, 해인사 소소산방(笑笑山房)에서 을 독송하면서 .. 2010. 3. 16.
무소유 (16) 나그네 길에서 사람들의 취미는 다양하다. 취미는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인간적인 여백이요 탄력이다. 그러기에 아무개의 취미는 그 사람의 인간성을 밑받침한다고 볼 수 있다.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물론 개인의 신체적인 장애나 특수사정으로 문밖에 나가기를 꺼리는 사람도 없지 않겠지만, 대개의 경우 여행이란 우리들을 설레게 할 만큼 충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호주머니의 실력이나 일상적인 밥줄 때문에 선뜻 못 떠나고 있을 뿐이지 그토록 홀가분하고 마냥 설레는 나그네길을 누가 마다할 것인가. 허구한 날 되풀이되는 따분한 굴레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다. 봄날의 노고지리가 아니더라도 우리들의 입술에서는 저절로 휘파람이 새어 나온다. 훨훨 떨치고 나그네길에 오르면 유행가의 가사를 들출 것도 없이 인생이 무어.. 2010. 3. 16.
무소유 (15) 조조할인 지난 일요일, 볼일로 시내에 들어갔다가 극장 앞에 줄지어 늘어서 있는 장사진을 보고, 시민들은 참 열심히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낮의 뙤약볕 아래 묵묵히 서 있는 그들의 얼굴을 자세히 보았을 때 측은한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먼 길의 나그네에게서나 느낄 수 있는 피로와 우수의 그림자 같은 걸 읽었기 때문이다. 모처럼 휴일을 맞아 남들은 권태로운 영역을 탈출, 녹음이 짙은 산과 출렁이는 물가에서 여가를 즐기고 있을 텐데, 무슨 자력에라도 매달리듯 마냥 같은 공해 지대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그들의 모습들이 조금은 안쓰러웠다. 시정의 서민들이 기껏 즐길 수 있는 오락이라는 게 바로 극장에서 돌아가고는 있지만. 우리도 가끔 그런 오락의 혜택을 받을 때가 있다. 그러나 백주의 장사진에 낄 만한 .. 2010. 3. 16.
무소유 (14) 회심기 내 마음을 내 뜻대로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한도인(閑道人)이 될 것이다.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온갖 모순과 갈등 속에서 부침하는 중생이다. 우리들이 화를 내고 속상해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외부의 자극에서라기 보다 마음을 걷잡을 수 없는 데에 그 까닭이 있을 것이다. 3년전,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절의 경내지境內地가 종단 몇몇 사무승들의 농간에 의해 팔렸을 때, 나는 분한 생각 때문에 며칠 동안 잠조차 이룰 수 없었다. 전체 종단의 여론을 무시하고 몇몇이서 은밀히 강행한 처사며, 수천 그루의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눈앞에서 넘어져 갈 때,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도저가 산을 헐어 뭉갤 때, 정말 분통이 터져 견딜 수가 없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원망스럽고 저주스러웠.. 2010. 3. 16.
무소유 (13) 동서의 시력 내 몸이 성할 때는 조금도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어쩌다 앓게 되면 육신에 대한 비애를 느낀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모른 체했다가, 조금 지나서는 큰 마음 먹고 약국에 들른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그토록 무거운 병원 문턱을 들어설 때 그 비애를 느낀다. 진찰권을 끊고 차례를 기다리며 복도에 앉아있는 그 후줄근한 시간에는 내 육신이 사뭇 주체스러워진다. 의사를 대했을 때 우리는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가 된다. 재작년이던가, 눈이 아파 한동안 병원엘 드나든 적이 있었다. 그 무렵 성전 간행 일로 줄곧 골몰했더니 바른쪽 눈이 충혈되고 찌뿌드드해 무척 거북스러웠다. 안약을 넣어도 듣지 않았다. 미적미적 미루다가 하루는 마음을 크게 먹고 신문에 자주 나오는 안과를 찾아갔다. 나처럼 서투르고 어설픈 사람이.. 2010. 3. 16.
무소유 (12) 탁상 시계 이야기 처음 사람과 인사를 나눌 경우, 서투르고 서먹한 분위기와는 달리 속으로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다. 이 지구상에는 36억인가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데, 지금 그 중의 한 사람을 만난 것이다. 우선 만났다는 그 인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하늘 밑, 똑같은 언어와 풍속 안에 살면서도 서로가 스쳐 지나가고 마는 인간의 생태이기 때문이다. 설사 나를 해롭게 할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와 나는 그만큼의 인연이 있어 만난 것이 아니겠는가. 그 많은 사람 가운데서 왜 하필이면 나와 마주친 것일까. 불교적인 표현을 빌린다면 시절 인연이 다가선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물건과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많은 것 중에 하나가 내게 온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탁상에는 내 생활을 거동케 하는 국적 불명의 .. 2010. 3.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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