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Nonpossession (무소유)39 무소유 (14) 회심기 내 마음을 내 뜻대로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어디에도 걸림이 없는 한도인(閑道人)이 될 것이다.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온갖 모순과 갈등 속에서 부침하는 중생이다. 우리들이 화를 내고 속상해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외부의 자극에서라기 보다 마음을 걷잡을 수 없는 데에 그 까닭이 있을 것이다. 3년전,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절의 경내지境內地가 종단 몇몇 사무승들의 농간에 의해 팔렸을 때, 나는 분한 생각 때문에 며칠 동안 잠조차 이룰 수 없었다. 전체 종단의 여론을 무시하고 몇몇이서 은밀히 강행한 처사며, 수천 그루의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눈앞에서 넘어져 갈 때, 그리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도저가 산을 헐어 뭉갤 때, 정말 분통이 터져 견딜 수가 없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이 원망스럽고 저주스러웠.. 2010. 3. 16. 무소유 (13) 동서의 시력 내 몸이 성할 때는 조금도 그런 생각이 없었는데, 어쩌다 앓게 되면 육신에 대한 비애를 느낀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 모른 체했다가, 조금 지나서는 큰 마음 먹고 약국에 들른다. 그러다가 마침내는 그토록 무거운 병원 문턱을 들어설 때 그 비애를 느낀다. 진찰권을 끊고 차례를 기다리며 복도에 앉아있는 그 후줄근한 시간에는 내 육신이 사뭇 주체스러워진다. 의사를 대했을 때 우리는 말 잘 듣는 착한 어린이가 된다. 재작년이던가, 눈이 아파 한동안 병원엘 드나든 적이 있었다. 그 무렵 성전 간행 일로 줄곧 골몰했더니 바른쪽 눈이 충혈되고 찌뿌드드해 무척 거북스러웠다. 안약을 넣어도 듣지 않았다. 미적미적 미루다가 하루는 마음을 크게 먹고 신문에 자주 나오는 안과를 찾아갔다. 나처럼 서투르고 어설픈 사람이.. 2010. 3. 16. 무소유 (12) 탁상 시계 이야기 처음 사람과 인사를 나눌 경우, 서투르고 서먹한 분위기와는 달리 속으로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다. 이 지구상에는 36억인가 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데, 지금 그 중의 한 사람을 만난 것이다. 우선 만났다는 그 인연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같은 하늘 밑, 똑같은 언어와 풍속 안에 살면서도 서로가 스쳐 지나가고 마는 인간의 생태이기 때문이다. 설사 나를 해롭게 할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와 나는 그만큼의 인연이 있어 만난 것이 아니겠는가. 그 많은 사람 가운데서 왜 하필이면 나와 마주친 것일까. 불교적인 표현을 빌린다면 시절 인연이 다가선 것이다. 이러한 관계는 물건과 사람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많은 것 중에 하나가 내게 온 것이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탁상에는 내 생활을 거동케 하는 국적 불명의 .. 2010. 3. 16. 무소유 (11) 흙과 평면 공간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는 이 말은 근대화에서 소외된 촌락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입에 담을 수 있는 오늘의 속담이다. 우리 동네에서 뚝섬으로 가는 나루터까지의 길도 그러한 유형에 속하는 이른바 개발 도상의 길이다. 이 길은 몇 해 전만 해도 산모퉁이며 논길과 밭둑길이 있어 사뭇 시골길의 정취가 배어 있었다. 그런데 무슨 지구 개발인가 하는 바람에 산이 깎이고 논밭이 깔아뭉개지더니 그만 허허벌판이 되고 말았다. 물 빠질 길도 터놓지 않아 비가 오거나 눈이 녹으면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그래도 이 길을 다니는 선량한 백성들은 당국에 대한 불평도 한 마디 없이 묵묵히 오고간다. 가히 양같이 어진 백성들이라 할 만하다. 이제 이 길에 얼음이 풀리니 장화를 신고도 발을 떼어놓기가 어렵다... 2010. 3. 16. 무소유 (10) 종점에서 조명을 인간의 일상생활은 하나의 반복이다. 어제나 오늘이나 대개 비슷비슷한 일을 되풀이하면서 살고 있다. 시들한 잡담과 약간의 호기심과 애매한 태도로써 행동한다. 여기에는 자기 성찰 같은 것은 거의 없고 다만 주어진 여건 속에 부침하면서 살아가는 범속한 일상인이 있을 뿐이다. 자신의 의지에서가 아니라 타성의 흐름에 내맡긴 채 흘러가고 있는 것이다. 모방과 상식과 인습의 테두리 안에서 편리하고 무난하게 처신을 하면 된다. 그래서 자기가 지닌 생생한 빛깔은 점점 퇴색되게 마련이다. 생각하면 지겹고 답답해 숨막힐 일이지만 그래도 그렁저렁 헛눈을 팔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일상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때로 나그네 길을 떠난다. 혹은 한강 인도교의 비어 꼭대기에 올라가 뉴스거리가 되어 보기도 한다. 그러나 얼마.. 2010. 3. 16. 무소유 (9) 아파트와 도서관 한때 우리 나라에는 '섰다' 하면 교회라는 말이 있었다. 그러나 그 말도 이제는 빛이 바래졌다. 그 자리에는 바야흐로 호텔과 아파트가 우뚝우뚝 치솟고 있다. 호텔은 요즘 밀려드는 외국 관광객의 사태로 이른바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니, 외화 획득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국가 정책에서 볼 때 크게 환영할 일이다. 그 외화의 위력 앞에 몸과 마음을 아무렇게나 굴려 겨레의 체면이나 긍지를 내동댕이치는 일만 없다면. 서민의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 장려되고 있는 건축 야식이 아파트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데 이 아파트가 본래의 건축 목적을 외면한 채 호화판으로 기울고 있으니 어떻게 된 노릇인가. 심지어 한 가구에 2천만 원짜리까지 있다니, 그것도 '파격적인 가격'이라고 한다니 서민들은 그야말로 파격적인.. 2010. 3. 16. 이전 1 2 3 4 5 6 7 다음 반응형